이웃 때문에 죽지도 못하는 남자라니.
처음엔 제목이 좀 웃겼습니다. 솔직히 가벼운 코미디인 줄 알았어요. 톰 행크스가 나오니까, 괜히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생각이 조금씩 틀렸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오토는 정말 까칠합니다. 아니, 까칠하다는 말로는 부족할지도 모르겠어요.
동네 사람들한테 잔소리하고, 규칙 어긴 사람들 못 참고, 표정은 늘 굳어 있고. 처음엔 “와… 저런 사람 옆집이면 진짜 피곤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밉지는 않더라고요.
그 이유를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내를 잃고 혼자가 된 사람의 표정은, 아무리 성질이 나 있어도 어딘가 텅 비어 보이니까요.
그 빈 느낌이 화면 밖까지 전해졌습니다.
사실 저는 그 장면에서 괜히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이 영화, 웃으려고 본 건데… 생각보다 마음이 무거워질 것 같아서요.

아내 없는 세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남자
바로 6개월 전, 평생을 함께한 사랑하는 아내 소냐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삶을 포기하기로 합니다.
오토에게 소냐는 유일한 친구이자 삶의 전부였습니다.
오토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장면들은 솔직히 보기 편하지 않았습니다.
웃으려고 본 영화였는데, 갑자기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특히 기차역 장면에서는 괜히 손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설마…” 하면서도 화면을 똑바로 못 보겠더라고요.
처음에는 조금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그런데 영화가 과거로 돌아가면서, 소냐와 함께하던 시간들이 하나씩 보일 때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기차 안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의 어색한 공기, 말없이 이어지던 눈빛. 그 장면은 화려하지도 않은데 이상하게 오래 남습니다. 오토는 원래부터 무뚝뚝했지만, 소냐 앞에서는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사고 이후의 이야기에서는 솔직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아이를 잃고, 소냐는 하반신이 마비되고. 그 시간을 함께 버텨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아마 오토에게 삶은 ‘행복’이 아니라 ‘소냐와 함께 버틴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소냐가 없는 세상은 그에게 그냥 텅 빈 방 같았을 것 같았습니다.
성가신 이웃들 때문에 죽을 수가 없는 남자
이상하게도, 오토의 계획은 번번이 어긋납니다.
아주 진지한 순간마다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르거나, 차가 말썽을 부리거나, 고양이가 나타납니다.
솔직히 처음엔 조금 영화적인 장치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절묘하다고?” 싶었죠.
그런데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저건 방해가 아니라, 붙잡힘에 가까운 게 아닐까 하고요.
특히 마리솔 가족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분위기가 조금씩 바뀝니다.
임신한 몸으로 씩씩하게 말 걸어오는 모습이 묘하게 현실적이었습니다.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미안해하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오토를 끌어들이는 태도. 그게 참 묘하게 웃겼습니다.
오토는 계속 투덜댑니다.
싫다고 하면서도 결국은 도와줍니다. 운전을 가르쳐주고, 망가진 걸 고쳐주고, 아이들 자전거를 잡아주고. 마치 본인은 원하지 않았다는 듯 인상을 쓰면서요.
그 장면들을 보면서 조금 웃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는 건, 생각보다 강한 이유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묘지에서 소냐에게 푸념하듯 말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습니다.
“나 죽고 싶은데 자꾸 방해해.”
그 대사가 우스운데, 이상하게 웃기지만은 않았습니다.
정말로 방해받고 있어서 화가 난 사람 같기도 하고, 어쩌면 조금은 안도하는 사람 같기도 해서요.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토는 아직 완전히 떠날 준비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고.
말없이 전하는 천 마디의 감정
오토는 말이 많지 않은 캐릭터이더라고요. 감정 표현도 서툴고, 주로 짜증과 불평만 늘어놓고. 그런데 톰 행크스는 표정 하나, 눈빛 하나로 오토가 품고 있는 깊은 슬픔과 그리움을 전달합니다.
특히 아내의 옷을 만지작거리는 장면, 아내가 좋아하던 음식을 만드는 장면, 아내의 사진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대사 없이도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연기력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영화 중반부터는 오토의 표정이 조금씩 부드러워져요. 마리솔의 딸들과 놀아줄 때 살짝 미소 짓는 모습, 길 잃은 고양이를 품에 안았을 때 어색해하면서도 다정해지는 모습에서 이런 미묘한 감정 변화를 톰 행크스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표현합니다.
이 영화에서 젊은 시절 오토 역을 톰 행크스의 실제 아들 트루먼 행크스가 연기했다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젊은 오토와 늙은 오토의 모습이 정말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톰 행크스의 아내 리타 윌슨이 제작자 중의 한 명이라는 것도 의미 있는 부분입니다. 가족이 함께 만든 영화라는 점에서 더욱 진정성이 느껴졌습니다.
이웃이라는 이름의 가족
오토는 결국 자살에 실패하는 게 아니라 포기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죽으면 마리솔 가족이, 길 잃은 고양이가, 동네 이웃들이 어려움을 겪을 거라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걸 깨달은 거예요.
마리솔이 셋째 아들을 낳고, 그 아이의 이름을 오토의 아내 이름인 '소냐'에서 따온 '소니'라고 지은 장면에서 오토는 피로 연결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연결된 진짜 가족을 얻은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오토의 장례식 장면이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고, 다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를 기억합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저는 묘하게 조용해졌습니다. 일부러 울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오히려 담담해지더라고요.
아마 오토는 이런 장면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일상에 남아 있을 거라는 걸요.
저는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바로 무언가를 깨달았다거나, 인생이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괜히 휴대폰을 들었다가 내려놓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할까 말까 잠깐 고민했거든요.
삶의 이유가 거창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그날은 조금 다르게 들렸습니다.
누군가의 초인종을 한 번 더 받아주는 일, 귀찮아도 차 문을 대신 열어주는 일, 그런 사소한 장면들이 오래 남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오토만큼 단단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조금은 덜 쉽게 포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가끔, 아무 이유 없이 외롭다고 느껴지는 날이면
묘지에서 소냐에게 투덜거리던 그 장면이 떠오릅니다.
죽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결국은 이웃들 때문에 살아 있던 그 사람 말입니다.
그게 이상하게 위로가 됩니다.
설명은 잘 안 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