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가장 실패한 나, 허무주의, 세상을 구하는 태도

by hercules2 2026. 3. 6.

이 영화를 처음 본 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영화를 본 날이 평일 밤이었는데, 극장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보기 전엔 그렇게까지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멀티버스라는 설정이 한창 유행이던 때였고, 또 하나의 복잡한 SF 영화겠거니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저는 조금 당황했습니다.
화면은 빠르게 전환되고, 상황은 설명할 틈 없이 튀어 오르고, 인물들은 진지하다가도 갑자기 황당해집니다. 웃어야 할지, 따라가야 할지 잠깐 멍해졌습니다.
“이게 뭐지…?”
너무 산만한 전개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가 끝났을 때 제 마음은 오히려 조용해져 있었습니다. 묘하게 이 이야기가 결국 어디로 가는 건지, 그때서야 조금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포스터

가장 실패한 나

주인공 에블린은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일과 까다로운 세무조사, 멀어지기만 하는 가족들로 지쳐있는 평범한 이민자입니다.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그러던 중, 다른 우주에서 온 남편을 만나게 되고 충격적인 말을 듣습니다.

 

수많은 우주 중 당신은 가장 실패한 에블린이라고.
그 대사를 듣는 순간 저는 괜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그때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조금만 더 용기가 있었더라면?”
영화는 그 ‘만약’을 실제로 보여줍니다.

 

무술 고수가 된 에블린, 유명 배우가 된 에블린, 셰프가 된 에블린. 심지어 손가락이 소시지인 우주까지 등장합니다. 처음엔 웃음이 나왔지만, 점점 씁쓸해졌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세계가 지금의 나를 은근히 초라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다른 우주에는 멋진 나도 있는데, 지금의 나는 왜 이렇게 어설플까.
그 질문은 영화 속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제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허무주의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빌런 조부 투파키는 단순히 세상을 부수려는 악당이 아닙니다.
그녀는 모든 우주를 동시에 경험해 버린 존재입니다. 너무 많은 가능성과 선택지를 봐버린 나머지, 결국 아무것도 의미 있게 느껴지지 않게 된 사람.
“어차피 다 의미 없어.”
이 말은 영화 속 대사이지만, 요즘 제 주변에서도 자주 들리는 말 같습니다.

 

열심히 살아도 불안하고, 선택은 많지만 확신은 없고, 남들과 비교하다 보면 결국 스스로를 깎아내리게 되는 삶.
조부 투파키가 만든 “에브리씽 베이글”을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조금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게 꼭 농담만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모든 것을 넣었더니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구멍이라니. 처음엔 황당했지만, 곱씹을수록 무섭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괜히 스마트폰을 떠올렸습니다.
끝없이 스크롤하고, 끝없이 비교하고, 끝없이 다른 삶을 들여다보지만 정작 내 마음은 점점 공허해지는 순간들.
설정만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데요. 이상하게도 보다 보면 그 감정만큼은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세상을 구하는 태도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게 된 인물은 웨이먼드입니다.
처음엔 조금 답답해 보였습니다. 너무 순하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죠.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저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는 세상이 얼마나 거칠 수 있는지 알기 때문에 일부러 다정함을 선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제발, 다정해지자.”
이 대사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제 머릿속에 오래 남았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조금 울었습니다. 크게 흐느낀 건 아니지만, 눈가가 뜨거워졌습니다.
아마도 그 말이 너무 단순해서, 그래서 더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지쳐 있을수록 우리는 날카로워집니다.
상처받을까 봐 먼저 밀어내고, 이해받지 못할까 봐 먼저 공격합니다.
그런데 웨이먼드는 그 반대를 선택합니다.

 

에블린 역시 결국 깨닫습니다.

그렇게 여러 우주를 오가고 난 뒤에도 결국 남는 건, 생각보다 별거 아닌 순간들이었던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함께 세탁소를 운영하던 날들,
투덜거리면서도 곁에 서 있던 남편,
서툴지만 솔직했던 딸.
그 모든 것이 사실은 이미 충분했다는 걸.

 

제가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은 돌멩이 장면입니다.
대사가 거의 없고, 소리도 거의 없는 그 순간.
두 개의 돌멩이가 절벽 위에 놓여 있습니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지만, 자막으로 이어지는 대화는 오히려 더 또렷합니다.
그 장면에서 저는 이상하게 숨을 고르게 됐습니다.

복잡하게 흩어졌던 이야기들이 잠깐 멈추는 느낌이었거든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꼭 대단한 해답이 필요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누군가 옆에 있다는 느낌이면 되는 순간도 있으니까요..

결국, 나는 어디에 있고 싶은가

영화의 마지막에서 에블린은 말합니다.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나는 너와 여기 있고 싶다고.
그 말이 참 단순한데,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가능성을 포기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우리는 늘 더 나은 선택을 고민합니다.
더 좋은 직장, 더 안정적인 미래, 더 멋진 모습.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지금 옆에 있는 사람보다 더 중요한 가능성이 정말 있을까?
영화 한 편이 삶을 완전히 바꾸진 않겠죠.
하지만 나의 현재와 과거를 생각해 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가지 않은 길’은 앞으로도 계속 생각날 겁니다.
아마 완전히 사라지진 않겠죠.

꼭 대단한 변화가 생긴 건 아니지만, 그날 이후로 괜히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고 싶어지는 순간이 가끔 생겼습니다.
이 영화는 보는 동안에는 솔직히 좀 정신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니 이상하게 한 가지 감정만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아마 그래서였을까요.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괜히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고 싶어 졌습니다.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그냥 “밥 드셨어요?”하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hercules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