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를 봤을 때 꽤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스타일의 스파이 영화는 처음이었거든요. 세련된 액션과 위트 있는 대사, 그리고 무엇보다 ‘신사 스파이’라는 설정이 너무 멋있었습니다.
그래서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가 나온다고 했을 때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렸는데 처음 볼 때는 조금 어색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주인공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영화는 시간을 훨씬 거슬러 올라가, 킹스맨이라는 조직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이번 편이 알려 주고자 하는 게 뭘까?”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니 이 영화는 단순히 스파이 조직의 탄생 이야기가 아니라, 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에 더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영화의 중심에는 옥스포드 공작과 그의 아들 콘래드가 있습니다. 공작은 전쟁이 얼마나 잔혹한지 잘 아는 사람이라서 아들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합니다.
이 장면들을 보면서 저는 제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는 항상 “위험한 일은 하지 마라”라는 말을 자주 하셨거든요. 그때는 그 말이 참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왜 나를 믿어주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요.
하지만 나이가 조금 들고 나니, 그게 단순한 간섭이 아니라 걱정이었다는 걸 알게 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영화 속 공작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반대로 콘래드는 세상을 바꾸고 싶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결국 그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전쟁터로 향합니다.
이 두 사람의 마음이 부딪히는 장면들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누가 옳은지 판단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공작의 마음도 이해가 됐고, 콘래드의 선택도 틀렸다고 말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맞고 틀린 문제가 아니라, 그냥 둘 다 이해가 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 콘래드가 전장에서 쓰러집니다.
저는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잠시 숨을 멈추었습니다. 옥스퍼드 공작이 아들의 죽음을 마주하는 장면에서 배우 랄프 파인즈의 표정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대사가 많지 않은데도, 그 눈빛만으로도 감정이 전해지더라고요.
이 장면을 보다가 저의 어린 시절 기억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자전거를 배우다가 몇 번 크게 넘어졌던 적이 있습니다. 무릎이 까지고 손바닥이 아 긁혔는데, 그때는 오히려 창피한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제 상처를 보더니 아무 말 없이 약을 발라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때 그냥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제가 다친 것보다 더 마음이 아팠을지도 모르겠다고요.
빌런의 광기보다 더 무서운 현실의 전쟁
이번 영화에도 독특한 악당들이 등장합니다.
기괴한 춤과 과장된 행동 때문에 처음에는 조금 웃기기도 했습니다. “이게 맞나?”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고요.
생각해 보면 영화 속 악당들이 벌이는 일은 결국 전쟁을 부추기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전쟁은 실제 역사에서도 일어났던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참호 속에서 병사들이 싸우는 장면이나 독가스가 퍼지는 장면은 전쟁의 잔혹함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진짜 무서운 건 라스푸틴 같은 인물이 아니라, 전쟁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난 뭐부터 해야 할까? 우선 집 밖으로 나가야 할까. 아니면 집에 최대한 움츠리고 있어야 할까. 생각도 잠깐 해 보았습니다.
시리즈 팬이라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연결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문장이 다시 등장하는 순간, 괜히 반가웠습니다. 예전에 들었을 때보다 이번 영화에서는 그 말의 의미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거든요.
전쟁이라는 거친 현실 속에서도 품위와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 그게 바로 킹스맨의 시작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옥스포드 공작이 아들을 잃은 뒤 보여주는 슬픔은 꽤 오래 남았습니다. 그 감정을 억지로 멋지게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킹스맨 조직이 공식적으로 시작되는 장면에서 마음속으로 웅장함 같은 걸 느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한 아버지의 사랑에서 시작됐다는 사실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며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잠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예전에는 킹스맨을 그냥 멋있는 스파이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화려한 액션과 유머가 있는 시리즈 정도로요.
하지만 결국 킹스맨이 말하고 싶었던 건 멋진 스파이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아닐까 하고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은 마음, 누군가의 희생을 헛되게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 말입니다.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신나는 액션 영화는 아니지만 분명 진심이 느껴지는 영화였습니다.